아버지는 아주 별난분이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선 안된다고 가르쳤다. 내가 아주 어렸을때, 설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머니댁에서 세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할머니는 손자에게 용돈을 주고 싶어하셨다. 나는 매우 어렸음에도 (초등학생도 아니었다.) 만원짜리 한장을 내미는 할머니를 만류하며, 아버지의 눈치를 보았고, 아버지는 역시나 받으면 안된다는 눈치를 줬던것 같다. 몇번을 밀어냈지만 할머니는 내 주머니에 꼬깃하게 접은 지폐를 밀어넣었고 나는 집에서 떠밀려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아버지가 차를 멈췄다. 나는 차에서 내려 자동차 먼지떨이에 엉덩이가 부르트도록 맞았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참 슬픈 기억이다. 그렇게 모질게 배웠던 ‘아버지의 인간의 도리’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되긴 커녕 모든것을 다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다른사람의 처지를 미리 이해하는것… 참 좋은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서면 더 이상 미덕이 아닐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진심을 베풀고 싶어할때, 난 언제나 사양했었고 나 때문에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되면 쉽게 포기해버렸다. 그 사람에게 폐가 될까봐… 그리고 언젠가는 갚아야 할 짐이라 배웠기에…
이런 강박의 흔적이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는 오히려 득이 될 때가 많았다. 대체적으로 나는 예의바르고 누군가의 은혜를 잊지 않으며, 늘 사려깊은 그런 캐릭터로 묘사되니까… 오히려 그것은 나와 누군가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관계가 되었을때 문제가 된다. 누군가 나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뭔가를 받을줄 모르는 사람은, 주는것도 못해. 당신이야 말로 정말 이기적이야’ 라고…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맞는 말이다… 진심으로 뭔가를 주고 싶어하는 그 사람의 맘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것이다. 나도 그 사람에게 늘 뭔가를 주고 싶어했는데 말이다… 왜 그걸 몰랐던 것일까…
하지만 지금도 늘 걱정한다… 내가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있는건 아닐까 하고… 딜레마다. 누군가가 소중해지면 그사람이 행여 다칠까봐 걱정이 되는것은 도대체가 어쩔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