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시와 이즈미상
2001년, 대포고냥군은 캐나다로 유학을 갔었다. 처음엔 홈스테이에서 학교를 다니다 이러저러한 불편함 때문에 3개월 후 아파트를 렌트했다. 그리 비싼 비용은 아니었지만 아파트가 혼자 쓰기엔 너무 넓어 룸메이트를 구하게 되었는데, 그게 요즘엔 연락이 끊어진 사사모리 (笹森) 군이다. 일본인 룸메이트가 생기자, 자연스레 대포고냥군은 일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로 알게 된 타케시 (毅) 군. 뭐랄까, 사사모리는 전형적인 조심성 많은 일본인 이었는데, 타케시는 그렇지 않았다. 전혀 조용하지 않고, 지나치게 개인적 성향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자기 속내를 잘 터놓는 어쩌면 한국사람과 닮은 점이 많았던 그런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정작 룸메이트로 1년 여간을 함께 지냈던 사사모리 보다 타케시와 더 친해졌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진짜 ‘친구’ 가 되어 있다.
타케시라는 이름은 일본에선 아주 흔하다. 보통은 타케시라는 이름에 ‘武’ 나 ‘武志’ 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는 드물게도 ‘毅’ 라는 한자를 쓴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도쿄에서 의료계의 헤드헌터로써 일하고 있지만, 유학오기 직전에 타케시는 멕시코 요리 가게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스시나, 롤 같은 요리를 종종 만들어 우리가 살던 아파트로 찾아오곤 했다. 이 친구에 대해 갑자기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번은 타케시가 살던 아파트로 친구 몇 명이 찾아간 일이 있었는데 파티 비슷한 것을 하고서 피곤해서 바닥에 누워 잠깐 눈을 붙였던 것 같다. 대포고냥군은 아마도 뭔가 행복한 꿈을 꾸었던 것 같고, 눈을 떠보니 바로 앞에 자고있었던 타케시를 꼭 안고 있는거다. 아, 그 민망함이란… 아마도 타케시는 날 위해서 계속 자는 척 했던 것 같다.
사실, 타케시가 진짜 친구가 되었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2007년의 결혼식 때였을게다. 결혼 전에도 메신저 등으로 자주 수다를 떨곤 했던건 사실이지만, 대포고냥군이 결혼한다고 타케시에게 이야기 했을때 ‘꼭 가겠다’ 고 했던 말을 대포고냥군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휴가 까지 내서 타케시가 ‘정말로’ 온 것이다. 말쑥한 검정 수트에 포켓에 행커치프까지 꽂고. 길을 가다 만난 지인에게 시간나면 술 한잔 하자는 것 같은 맘에도 없는 말을 남발했던 대포고냥군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결혼식 날 타케시의 참석은 내가 언젠간 꼭 갚아야 할 ‘빚’ 이 되어버렸다.
얼마전, 타케시가 메신저로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대포고냥군이 한국에 놀러오라고 했더니 꼭 가겠단다. 역시나, ‘내뱉으면 실행에 옮기는 성격인’ 타케시는 11월 20일 비행기를 예약했고 여자친구인 이즈미 (泉) 상의 손을 꼭 잡고 입국했다. 난생 처음 집에 찾아오는 외국인 (!) 을 겪게된 도돌미와입후는 엄청 긴장했다. 심지어 한복을 입고 나가야 되는것 아니냐고 했다;;; 한 끼 정도 집 밥을 해 먹일거라던 도돌미와입후는 메뉴를 결정하는데만 일주일 걸렸다. 타케시가 좋은 친구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즈미상은 참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3일간, 다들 즐겁게 이야기 하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찾아 다녔다. 도돌미와입후는 이즈미상에게 한글 읽는 법을 가르쳤다. 마지막 날에는 ‘산사춘’ 따위의 단어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가르쳐 놓고 엄청 뿌듯해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나름, 타케시가 한국에 왔다 간 3일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특히 말도 통하지 않았던 도돌미와입후는 참 답답하고 힘들었을텐데 남편의 친한 친구라 더 애써 준것이 너무 고맙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타케시에게 물어봤다. 3년간은 계획이 없다길래 왜 3년이냐고 물었더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산 집의 대출이 3년 후면 모두 상환된다는 말을 한다. 왠지 맘이 찡하다. 그래… 역시 타케시는 똑바른 놈이야. 결혼식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마 했다. 물론 ‘진심’ 으로 말이다.
오른쪽 부터 타케시, 마이코, 타쿠야 – 2002년 여름, Vancou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