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봄, 칸사이 여행 – 동양정 (東洋亭)

백 년 역사의 경양식 - 동양정

백 년 역사의 경양식 – 동양정

작년엔 이사도 있었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매 년 가곤 했었던 여행을 가지 못했다. 게다가 쌓여있던 항공사 마일리지도 소진할 겸 해서 벚꽃이 피크에 달하던 4월 첫째 주에 출발한 칸사이 여행. 칸사이라면 오사카, 쿄토, 나라, 고베 정도 일텐데, 올해는 느슨느슨 쉴 겸 해서 오사카와 고베만 둘러보고 오는 것으로 정했다. 김포에서 출발, 칸사이공항에 내려 한 시간 가까이 난카이센 (南海線) 을 타고 난바 (難波) 역에 내렸다. 우리가 오사카에 머무는 동안 묵을 호텔은 미도스지센 (御堂筋線) 으로 난바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요도야바시 (淀屋橋) 역에 있었는데, 호텔로 가기 전에 이번 여행에서의 첫 식사를 하기로. 징징이 주변에 유명한 경양식 집이 있단다. 난바역에 있는 백화점 타카시마야 (高島屋) 의 7층에 위치한 동양정 (東洋亭). 아, 사실 이번 여행을 오사카와 쿄토가 아니라 고베로 정한 것은 일본의 경양식과 디저트를 질릴정도로 먹어보고 싶어서였… 그 쳐묵쳐묵 여행의 첫 경양식, 동양정이다.

동양정은 타카시마야의 7층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데, 문이 열리자 마자 가게 앞에 늘어선 엄청난 대기열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점심시간인 것을 감안해도 서른 명이 넘는 줄 앞에서는 잠깐 갈등한 대포고냥군과 징징양. 그래도 ‘맛있는 음식’ 이 올해 여행의 테마인데 무조건 기다려야겠다. 그런데 의외로 대기열이 빨리 줄어드네? 동양정 입구에서 벽을 따라 서른개 가까운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식당으로 들어갈 때마다 옆 의자로 옮기는 것이 고역이다. 게다가 우리 바로 옆엔 무릎이 좋지 않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참 안쓰러워 보였… 그렇게 30여 분을 옆으로 옆으로 옮겨, 드뎌 입장!

동양정의 특기인 토마토 젤리, 카레 레토르트, 토마토 샐러드 소스를 팔고 있음

동양정의 특기인 토마토 젤리, 카레 레토르트, 토마토 샐러드 소스를 팔고 있음

디저트가 포함된 B 세트로 정했다

디저트가 포함된 B 세트로 정했다

다들, 런치를 먹는 것 같으니 우리도 일단 런치를 봄. 런치는 토마토샐러드 + 메인요리 + 바게트 빵 혹은 라이스 로 구성된 세트 A (1,260엔) 와 A 세트에 커피, 밀크티 등 음료와 일곱가지의 디저트 중에 하나를 선택해 추가 할 수 있는 B 세트 (1,640엔) 이 있군. 징징은 A 세트를 먹겠다고 했다가 줏대없이 날 따라 B 세트로 주문. 메인요리는 가장 유명한 일본식 햄버거스테이크를 포함해서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햄버거스테이크를 먹어야겠지? 그리고 빵 하나, 라이스 하나. 디저트는 푸딩 하나와 몽블랑 하나. 음료는 밀크티와 스트레이트 홍차. 주문을 마치면 일회용이지만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물티슈를 주는데 별 것 아니지만 이런 배려가 뭔가 안심하고 마음을 내려놓게 한달까. 여튼 좋다는 말이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리저리 가게를 둘러보았다. 헉, 1897년 설립. 지금은 백화점의 고급 식당가에 있긴 하지만 무려 백 년이 넘은 가게다. 그 백화점이라는 다카시마야도 1831년에 설립, 칸사이지방을 중심으로 20여개 점포를 가진 정말 역사 깊은 백화점이라능. 뭔가 일본이라는 나라는 확실히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였던 것은 사실인것 같다. 우리가 평소에 우습게 생각하는 햄버거스테이크 – 그것도 함박스테이크 – 가 여기에선 한 가게에서 100년을 지속할 수 있는 메인 메뉴라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100년동안 햄버거스테이크에 집중했는데 어찌 경지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나 싶은 생각…

커트러리가 담긴 바스켓이 나오고

커트러리가 담긴 바스켓이 나오고

그러고 보니 1897년에 개업해 100년이 훨씬 지났다

그러고 보니 1897년에 개업해 100년이 훨씬 지났다

먼저, 토마토 샐러드가 나왔다. 얼핏 보면 껍질을 깐 중간 사이즈 토마토에 약간은 붉어보이는 사우전아일랜드소스 같은 것을 끼얹은 비쥬얼인데, 나이프로 잘라 맛을 보면 그 맛이… 기가 막힌다. 토마토는 정말 신선하고 살짝 얼려 서빙된다. 뭔가 달짝지근하고 새콤한 소스에 절여져 있는데 이 토마토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산미가 매우 적고 매우 달다. 위에 얹어진 샐러드 소스도 정말 절묘하게 어울리는데, 아래 깔린 캐비지 + 오이 + 참치 샐러드가 초 예술이다. 뭔가 참치 슈나페 같은 맛인데 토마토의 신선함과 그 참치 샐러드의 짭짤한 맛의 궁합이… 아, 그냥 가서 먹어보세요!

오므라이스 장인 홋쿄쿠세이 (北極星) 이나, 긴자의 츠바메그릴 같은 일본의 유명한 경양식 가게를 다녀 볼 수록 느끼게 되는 것은, 일본에서의 ‘경양식’ 이라는 것은 ‘성의없는’, ‘대충의’, ‘간단한’ 그런 음식이 절대 아니라는 거다. 이런 경양식 가게에서 서빙되는 식전빵, 라이스 조차도 그 퀄리티와 정성은 대단하다. 우리가 흔히 먹는 돈까스 가게에서 나오는 푸슬푸슬 막 날아가는 그런 쌀을 사용한 라이스를 여기선 한 번도 본 적 없으며, 식전빵과 같이 나오는 버터가 발림성이 좋도록 살짝 데워 서빙되는 것과 같이, 지나치기 쉬운 작은 요소요소에 ‘정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토마토샐러드, 이건 뭐... 예술이다.

토마토샐러드, 이건 뭐… 예술이다.

빵과 라이스를 선택할 수 있는데, 정말 맛있다

빵과 라이스를 선택할 수 있는데, 정말 맛있다

드디어 메인메뉴 햄버그스테이크

드디어 메인메뉴 햄버그스테이크

하아... 비쥬얼도 비쥬얼이지만, 내공 자체가 다르다

하아… 비쥬얼도 비쥬얼이지만, 내공 자체가 다르다

메인 요리였던 일본식 햄버거스테이크. 뭐 대포고냥군의 블로그에 한국의 모 백화점 식당가의 햄버거스테이크를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역시나 그건 모양새만 흉내낸 전혀 다른 음식이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찬 알루미늄 호일을 찢어 먹는 ‘컨셉’ 만 동일할 뿐, 절대 맛은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내가 느끼는 햄버거스테이크라는 음식은 뭔가 올드하면서 따뜻한 그런 기억 같은 것인데, 어렸을 적 칭찬 받을 일이 있거나 하는 날,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한껏 기대하고 가는… 그런 음식이랄까. 동양정의 햄버그스테이크는 그런 따뜻한 맛이다. 한입 베어 물면 뭉클해지는…

호텔로 가는 길이라 더욱 큰 기대 없이 들렀던 난바 타카시마야 7층의 동양정. 아… 여기 정말… 최고다.

그럼, 다음 칸사이 여행 포스팅 까지 안녕-!

대포고냥군의 디저트, 푸딩과

대포고냥군의 디저트, 푸딩과

징징의 몽블랑

징징의 몽블랑

아... 여기 정말 최고다

아… 여기 정말 최고다

 

 

2014 봄, 칸사이 여행 – 동양정 (東洋亭)”에 대한 8개의 생각

  1. 징징

    으아아아앙, 도마도도마도! 저 도마도를내게도! 지금 이 순간 참으로 먹고싶고도!

    츠바메그릴 vs. 동양정, 나모키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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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포고양이 글쓴이

      나는 츠바메그릴 보다 동양정이 더 좋았다능?
      실제로도 츠바메그릴보다 동양정이 훨 역사가 긴 것 아님? 동양정은 1897년 개업인데?
      여튼, 샐러드 뿐 아니라,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도 매우매우 배려받는다는 느낌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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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ㅈㅇ

    와, 나도 무조건 B세트! 차곡차곡 나란히나란히 놓여있는 토마토도 귀엽고.
    오사카를 가게된다면 나도 여기서 첫끼를 먹겠어요- 라고 다짐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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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포고양이 글쓴이

      A 랑 B 랑 비교하면 당연히 B 세트라고 봐-
      B 세트에 들어간 홍차, 밀크티도 정말 고퀄이었지 말입니다?
      다음에 다시 동양정으로 간다면, 메인 요리를 다른 것으로 주문해 보고 싶다능-
      그나저나, 우리 반상회 멤버 다 같이 일본 여행 가면 장난아니겄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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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린애플

    오랜만의 포스팅!!
    저 5월에 또 가요. 도쿄.. -ㅂ- 저도 먹방찍으러.. 깔깔..

    그나즈나..
    저 스킨 다시 바꿀까봐요. ㅠㅠ
    댓글 달기 너무 불편.. 주위 개발자들한테 도움을 요청해볼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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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포고양이 글쓴이

      일본 여행은 참 아기자기한 맛이 있죠…
      처음엔 쇼핑에, 그 다음엔 맛집에, 말까지 조금 통하게 되면
      일본 여행의 신세계가 열릴거예요- ㅎㅎ

      워프 기본 스킨이 처음엔 맘에 안들었는데, 이것저것 조금씩 손대다 보니
      이제야 조금 정리된 느낌이어요. 근데 기본 워프 스킨의 폰트는 왤케 크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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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린애플

        첨에 폰트 느므 커서 다 줄여놨었는데
        요샌 노-_-안이 왔는지 큰 글씨가 좋아요;;;
        지금 스킨 바꾸고 그냥 큰 글씨 유지 중..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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