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이사도 있었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매 년 가곤 했었던 여행을 가지 못했다. 게다가 쌓여있던 항공사 마일리지도 소진할 겸 해서 벚꽃이 피크에 달하던 4월 첫째 주에 출발한 칸사이 여행. 칸사이라면 오사카, 쿄토, 나라, 고베 정도 일텐데, 올해는 느슨느슨 쉴 겸 해서 오사카와 고베만 둘러보고 오는 것으로 정했다. 김포에서 출발, 칸사이공항에 내려 한 시간 가까이 난카이센 (南海線) 을 타고 난바 (難波) 역에 내렸다. 우리가 오사카에 머무는 동안 묵을 호텔은 미도스지센 (御堂筋線) 으로 난바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요도야바시 (淀屋橋) 역에 있었는데, 호텔로 가기 전에 이번 여행에서의 첫 식사를 하기로. 징징이 주변에 유명한 경양식 집이 있단다. 난바역에 있는 백화점 타카시마야 (高島屋) 의 7층에 위치한 동양정 (東洋亭). 아, 사실 이번 여행을 오사카와 쿄토가 아니라 고베로 정한 것은 일본의 경양식과 디저트를 질릴정도로 먹어보고 싶어서였… 그 쳐묵쳐묵 여행의 첫 경양식, 동양정이다.
동양정은 타카시마야의 7층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데, 문이 열리자 마자 가게 앞에 늘어선 엄청난 대기열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점심시간인 것을 감안해도 서른 명이 넘는 줄 앞에서는 잠깐 갈등한 대포고냥군과 징징양. 그래도 ‘맛있는 음식’ 이 올해 여행의 테마인데 무조건 기다려야겠다. 그런데 의외로 대기열이 빨리 줄어드네? 동양정 입구에서 벽을 따라 서른개 가까운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식당으로 들어갈 때마다 옆 의자로 옮기는 것이 고역이다. 게다가 우리 바로 옆엔 무릎이 좋지 않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참 안쓰러워 보였… 그렇게 30여 분을 옆으로 옆으로 옮겨, 드뎌 입장!
다들, 런치를 먹는 것 같으니 우리도 일단 런치를 봄. 런치는 토마토샐러드 + 메인요리 + 바게트 빵 혹은 라이스 로 구성된 세트 A (1,260엔) 와 A 세트에 커피, 밀크티 등 음료와 일곱가지의 디저트 중에 하나를 선택해 추가 할 수 있는 B 세트 (1,640엔) 이 있군. 징징은 A 세트를 먹겠다고 했다가 줏대없이 날 따라 B 세트로 주문. 메인요리는 가장 유명한 일본식 햄버거스테이크를 포함해서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햄버거스테이크를 먹어야겠지? 그리고 빵 하나, 라이스 하나. 디저트는 푸딩 하나와 몽블랑 하나. 음료는 밀크티와 스트레이트 홍차. 주문을 마치면 일회용이지만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물티슈를 주는데 별 것 아니지만 이런 배려가 뭔가 안심하고 마음을 내려놓게 한달까. 여튼 좋다는 말이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리저리 가게를 둘러보았다. 헉, 1897년 설립. 지금은 백화점의 고급 식당가에 있긴 하지만 무려 백 년이 넘은 가게다. 그 백화점이라는 다카시마야도 1831년에 설립, 칸사이지방을 중심으로 20여개 점포를 가진 정말 역사 깊은 백화점이라능. 뭔가 일본이라는 나라는 확실히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였던 것은 사실인것 같다. 우리가 평소에 우습게 생각하는 햄버거스테이크 – 그것도 함박스테이크 – 가 여기에선 한 가게에서 100년을 지속할 수 있는 메인 메뉴라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100년동안 햄버거스테이크에 집중했는데 어찌 경지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나 싶은 생각…
먼저, 토마토 샐러드가 나왔다. 얼핏 보면 껍질을 깐 중간 사이즈 토마토에 약간은 붉어보이는 사우전아일랜드소스 같은 것을 끼얹은 비쥬얼인데, 나이프로 잘라 맛을 보면 그 맛이… 기가 막힌다. 토마토는 정말 신선하고 살짝 얼려 서빙된다. 뭔가 달짝지근하고 새콤한 소스에 절여져 있는데 이 토마토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산미가 매우 적고 매우 달다. 위에 얹어진 샐러드 소스도 정말 절묘하게 어울리는데, 아래 깔린 캐비지 + 오이 + 참치 샐러드가 초 예술이다. 뭔가 참치 슈나페 같은 맛인데 토마토의 신선함과 그 참치 샐러드의 짭짤한 맛의 궁합이… 아, 그냥 가서 먹어보세요!
오므라이스 장인 홋쿄쿠세이 (北極星) 이나, 긴자의 츠바메그릴 같은 일본의 유명한 경양식 가게를 다녀 볼 수록 느끼게 되는 것은, 일본에서의 ‘경양식’ 이라는 것은 ‘성의없는’, ‘대충의’, ‘간단한’ 그런 음식이 절대 아니라는 거다. 이런 경양식 가게에서 서빙되는 식전빵, 라이스 조차도 그 퀄리티와 정성은 대단하다. 우리가 흔히 먹는 돈까스 가게에서 나오는 푸슬푸슬 막 날아가는 그런 쌀을 사용한 라이스를 여기선 한 번도 본 적 없으며, 식전빵과 같이 나오는 버터가 발림성이 좋도록 살짝 데워 서빙되는 것과 같이, 지나치기 쉬운 작은 요소요소에 ‘정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메인 요리였던 일본식 햄버거스테이크. 뭐 대포고냥군의 블로그에 한국의 모 백화점 식당가의 햄버거스테이크를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역시나 그건 모양새만 흉내낸 전혀 다른 음식이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찬 알루미늄 호일을 찢어 먹는 ‘컨셉’ 만 동일할 뿐, 절대 맛은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내가 느끼는 햄버거스테이크라는 음식은 뭔가 올드하면서 따뜻한 그런 기억 같은 것인데, 어렸을 적 칭찬 받을 일이 있거나 하는 날,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한껏 기대하고 가는… 그런 음식이랄까. 동양정의 햄버그스테이크는 그런 따뜻한 맛이다. 한입 베어 물면 뭉클해지는…
호텔로 가는 길이라 더욱 큰 기대 없이 들렀던 난바 타카시마야 7층의 동양정. 아… 여기 정말… 최고다.
그럼, 다음 칸사이 여행 포스팅 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