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기를 타고 외국에 나갈 때 마다, 좌석 앞 포켓에 꽂혀있는 면세품 판매 책자의 와인을 꼭 한 번 사 보고 싶었다. 언제나 사야지 사야지 했었다가, 와인은 출국시에 미리 예약을 해 두어야 돌아오는 편에 load 해 둔다는 것을 잊고는 항상 후회 했던 대포고냥군. 그래서 올해는 오사카로 출국하면서 잊지 않고 주문해 두었다. 5만원대의 저렴한 와인에서 부터 꽤 비싼 것 까지 다양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처음부터 20만원대가 넘어가는 와인을 사려니 손이 떨려서… 결국 적당한 (?) 11만원대 돈멜초 (Don Melchor) 2009년 빈티지로 골랐다. 돈 멜초는 칠레의 대표적인 프리미엄 와인 생산자인 ‘콘차 이 토로’ (Concha Y Toro) 의 아이콘과 같은 고급와인으로, 2000년대 이후로 카베르네쇼비뇽에 카베르네프랑을 5% 미만으로 블랜딩 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 결과, 열리기까지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카베르네쇼비뇽의 특성을 보완한 아주 섬세한 와인이라 한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얼른 따서 맛보고 싶었지만, 그 동안 대포고냥군의 이직도 있었고, 우리 결혼 7주년 기념일도 있었고 해서, 좋은 날에 열기로 해서 거의 한 달간 해가 들지 않는 다용도실 깊은 구석에 잠자고 있었다는.
돈멜초는 열리기 까지 두어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적은 블로그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마셔본 느낌으로는 돈멜초는 결코 그렇지 않다. 코르크를 열고나서부터 느껴지는 산미와 탄닌은 절대 무겁지 않으며 오히려 참 부드럽고 향긋하다. 일부러 와인의 2/3 쯤을 남겨 두었다가 다음날 마셔 보았는데, 처음과는 달리 너무 힘이 빠져버린 탓에 캐 후회했다. 젋은 시절, 와인 마시는 모임에서 오퍼스원 (Opus One) 을 한 잔에 5만원을 내고 마셨던 일이 있었다. 그 때도 ‘맛있지만 별 감흥은 없는’, 이게 한 병에 75만원이야? 하는 생각을 했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겨우 맛있는 와인과 맛없는 와인 정도를 구분하는 정도이지만 돈멜초의 향기가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참 맛있게 먹었다. 적당한 (?) 가격에 말이다.
최근 마쉐코3를 보며 팬이 된, 김훈이 쉐프님의 말을 빌어서 마무리를 짓자면 ‘맛있게 먹었으니까 합격 드리겠습니다.’